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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의 성금요일: 부재의 신학

  • Post category:Med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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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에서 Nothingness라는 개념은 존재론적인 사유의 중요한 한 축이 된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의 반대 의미로서의 ‘무’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 또는 비존재를 뜻한다. 하이데거와 후설과 니체와 사르트르의 시대의 철학에서 ‘신의 죽음’은 당연하게 여겨졌고 ‘신의 상실’은 더 이상 슬퍼할 일이 아니었다. 주체성을 지닌 존재로서의 인간은 극대화된 ‘자유’를 만끽하지만 동시에 ‘존재론적 불안’을 마주해야만하는 자유롭지만 비극적인 존재로 그려졌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근본적인 결여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 보았다. 특히 어떤 것의 결여됨을 의식하는 것을 인간의 고유한 능력(의식, 상상)으로 본다. 존재하지 않는 상태 (nothingness), 존재의 결여는 세상에 만연한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부정하며 불안한 상태를 딛고 열린 미래를 향해 자기자신을 던지는 인간을 불러낸다.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는 말은 기존 철학의 질서에 대한 도전이며 항변이었다. 자기자신을 용기있게 맞닥뜨리고, 되어가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긍정하며 ‘자유’자체로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의미있는 인간의 삶이라 보았다.

오늘 성금요일부터 시작해 성토요일 그리고 부활절 아침이 되기 전까지 이 몇일 동안 우리는 신의 부재를 경험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세상에서 그의 부재를 초래했으며, 우리는 남겨진 존재로서의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제자들은 그 부재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며 차가운 방에서 흐느꼈을 것이다. 마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가 그렇듯, 마치 신이 인간을 버린 것과 같은 비극적인 현실을 마주하며 두렵기 짝이 없는 비존재성을 마주한다. 이 팬데믹이 어떤 결론을 가져올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 시대에, 남겨진 그리스도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자기반성’의 기회를 이 시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부재의 경험은 절망을 낳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계기를 준다. 팬데믹의 시대, 성금요일에 경험하는 예수의 부재는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염세주의적인 절망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부재를 경험한 제자들은 진짜자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예수 곁에 늘 있었지만 자신을 넘어서지 못했던 제자들은 예수의 부재를 통해 마침내 자신들이 누구인지, 어떤 일에 부름을 받았는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희미한 깨달음을 가지게 된다. 예수의 부재로 인한 두려움과 그들이 갖었던 존재론적 불안은 그들을 자신의 껍데기를 깬, 초월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로 불러내었다. 부재의 신학은 새로운 관점과 희망을 가능하게 한다. 불안한 존재의 흔들림은 우리를 되어져가는 또 다른 존재로 변화하게 한다. 불안하다면 희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