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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무모함 II

  • Post category: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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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한 글을 앞서 너무 장황하게 써서, 이번 글에서는 요점만 간략히 쓰려고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예배를 중단하는 것이 믿음에 어긋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 보고싶다. 얼마전 뉴스를 들으니 한국의 십여개의 대형교회들 중에서 어떤 교회는 주일예배를 인터넷 예배로 대체하여 직접 모이지 않기로 했고, 다른 교회들은 예배를 강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시국에 주일예배를 인터넷 예배로 드린다면 그것은 믿음에 어긋나는 일일까? 각도를 약간 바꿔서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이런 시국에도 예배를 쉬지 않고 모여서 예배 드리면서 바이러스를 예배로 모인 사람들 사이에 전염시킬 뿐 아니라 그 사람들이 가는 모든 곳에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일이 하나님을 영화롭고 기쁘게 하는 일인가?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커뮤니티 전체를 바이러스로 감염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인가? 그곳에 사랑과 기쁨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는가?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질문들을 보고 핵심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믿음은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것이다. 사회적이라는 말은 교회가 진공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주어진 상황안에서 주위의 모든 정부, 단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교회의 공적인 책임은 다른 사회 단체가 지는 책임보다 결코 가볍지 아니하다. 진정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교회라면 오히려 발벗고 나서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바이러스를 통제 불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치료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공동체를 살리는 일이 사회적으로 더 책임있는 일이 아닌가?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확증하는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디다가 ‘믿음’을 가져다 대며 사람들을 죽이고 위험에 빠뜨리는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가? 아 맞다. ‘신천지’에서 똑같은 말을 하더라. 믿음이 강하면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음과 무모함은 구분되어한다. 함부로 모든 일들에 믿음이라는 이름의 잣대를 들이대면 안된다. 그것은 믿음이 아닌 무모함이 될 수 있다. 믿음은 생명을 살리고 풍성하게 하는 일, 어둠 속에서 빛을 바라보는 일, 고난과 역경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 내가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 그 은혜를 구현하는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행동하는 일이다.

당신이 믿음이 있다고 해서 물 위를 지금 걸을 수는 없지 않은가! 예수님은 물위를 걷다가 의심이 생겨 물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베드로를 향해 믿음이 작은 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당신이 물위를 걸을 수 없다고 해서 나는 당신이 믿음이 없다고 나무라지 않는다. 그건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이 아닐까. 물리적으로 물 위를 걸은 사건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은 믿음이 진정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은 혼돈과 죽음을 뜻하는 ‘바다’, 그 물에 빠지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라는 사실 역시 알려주고 있다. 예수께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영의 네러티브를 재해석하며,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물 위를 걷다.’는 말은 ‘당신이 믿음이 있으면 오늘날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과 동격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믿음은 바이러스에 걸렸다. 걸리지 않았다. 죽었다. 죽음에서 벗어났다. 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끝이 끝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미신적인 믿음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책임있게 행동하며 역사안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역사안에 하나님의 길을 드러내는 개신교가 되기를 오늘도 나는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