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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죽음을 맞으며

  • Post category:Med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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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죽음은 작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아마도 비슷한 사건들로 인해 받았던 과거의 충격까지 다시 되살아오는 듯 했기 때문이리라. 코로나로 인해 죽음이 흔해진 이 시대에, 매일 뉴스에서 오늘은 코로나로 몇 명이 죽었는지를 전하는 보도가 더 이상을 충격적인 이슈를 던지지 못하는 이 시대에, 그의 죽음은 한 사람의 죽음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아마도 그가 대체불가한 사람이라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간접적으로 그와 함께 일을 해본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보건데, 그가 서울시장으로서 보여준 비전과 일의 방식은 이전에 어떤 시장에게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어떤 정치인에게서도 보지 못한 방식이었다. 인권변호사로서의 삶, 시민운동가로서의 삶, 그리고 행정가로서의 삶을 아름답게 훌륭히 살아낸 그의 삶의 길은 존경할만하다. 특히, 정해진 성공으로의 길을 가지 않고 소신에 따라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온 그 궤적과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용기는 나에게 큰 도전을 주었다. 그런 그를 잃었다. 세상은 이제 그가 없는 만큼 공허해질 것이다. 나의 마음이 이렇게 공허한 것처럼 말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지 않겠는가. ‘모두 안녕’ 이라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담담히, 그리고 마치 장난스레 웃으며 던진 것 같은 그 마지막 말의 의미가 모두에게 이해될 때가 오리라 믿는다. 언제나처럼 질이 낮은 언론은 그의 죽음을 가지고 황색저널리즘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고, 그를 잃은 슬픔에 황망해하는 사람들은 그의 죽음의 책임을 물을 희생제물을 찾고 싶어한다. 그의 죽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려는 인간 같지 않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러나 지난 몇년간 그런 사람들을 몇 대하다 보니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모두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한다. 사람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흑백으로 일도양단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일차원적일 뿐인 좋고 나쁨의 단순한 사람평가 방식을 벗어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모두’는 각자 자신의 삶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간도특설대에서 일제를 위해 부역하며 독립군을 색출했던 사람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반성할 기회도 갖지 못했던 것 같고, 책임을 지지도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두 사람의 죽음이 묘하게 엇갈린다. 한 사람은 지극히 높은 잣대를 가지고 혹독하게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나 싶고, 다른 한 사람은 평생을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는 길을 택하지 않았나 싶다. 어떤 길이 더 지혜로운 길이었는가. 두 죽음은 나에게 오늘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나는 조금은 더 자비롭게 나를 바라보고 나의 잘못과 실수는 바로잡으며 선택에 책임지는 삶을 살고자 한다. 선택은 하나가 아니다. 인생은 선택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일 더 그를 그리워하는 선택을 하고자 한다. 아직 그를 보낼 준비가 다 되지 않았다. 그의 부재가 아직은 몸서리치게 서글프다. 그의 영혼이 이제는 평안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