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것을 보면 피하고 싶어진다. 복잡한데 답이 없는 것을 보면 회피하고 싶어진다. 더럽고도 복잡한 것을 보면 두렵다. 그것을 필연적으로 대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이 마음 한구석에서 떠오를 때면 비할 데 없이 두려운 감정이 나의 안에 그득찬다. 회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이의 심정은 고단하다. 그 고단함을 너무 잘 알기에 그래서 더 두렵다. 지금 내 심정이 딱 그렇다. 뒷덜미에 스멀스멀 오르는 한기가 머리를 쭈뼛이 서게 만든다. 발 아래 땅이 꺼져 끝없이 추락하고 말 것 같은 불안감에 배 안쪽이 간질간질하다.
나의 신앙과 신학의 여정은 마치 간달프의 심정과도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 편에서 회색의 간달프는 모리아로 들어간다. 회색의 간달프는 그 길을 통해 가는 것을 망설였다. 그 안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고대의 악마 모리아의 발록과 크하잣둠의 다리위에서 마주친다. 일행을 위해 다리를 막아선 회색의 간달프는 생명을 건 전투를 벌이다 결국 발록과 함께 심연으로 추락한다. 후에 고대의 악마 발록을 물리친 회색의 간달프는 부활해 백색의 간달프가 된다. 그리고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원정을 떠난 일행을 돕는다. 일단 이야기에서는 그렇다.
생명을 걸지 않으면 그 길을 지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일행도 위대한 원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간달프에게 모리아를 지나는 길은 득시글거리는 오크들로 인해 더럽고, 발록을 생각하면 복잡한데 답이 없고 무서웠을 것이다. 한숨을 크게 내쉬며 체념한 듯 발길을 옮기는 그의 모습 뒤편에서 나의 심경을 본다. 두렵다. 고단하다.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대결을 앞둔 사람 마냥 가슴이 쿵쾅거린다. 죽음의 맛이 입에서 느껴진다. 극우기독교 적폐 세력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더욱 두려운 일은 사악하고 교활한 악의 화신 사우론과 같은 적폐의 세력들은 여전히 어둠속에 존재하며 순수성과 위대함을 잃어버린 사루만과 같은 악의 추종세력들은 아이센가드에서 암약하며 우루크하이와 같은 포악하고 잔인한 변종들을 창조해 내었다. 그들 모두를 상대하는 것은 모리아의 발록을 상대하는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극우기독교 세력의 배후는 그렇게 무시무시하다.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는 재벌들은 마치 사우론이 절대반지를 손에 넣은 것과 같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돈의 힘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권세는 거의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고 지배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다. 사람들의 욕망을 조절하는 일은 사악하고 교활한 그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다. 그리고 재벌에게 붙어 기생하는 사루만과 같은 추종세력들이 한국에는 많이 있다. 언론과 검찰, 그리고 시대에 따라 그 겉모습과 당명을 바꿔 왔던 친일파, 독재 옹호 정치세력들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오늘도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헤게모니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혹여 빼앗겨버렸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다시 되찾아 오기 위해서 자신들의 일터에서 암약하며 세력을 키워 나간다. 그 결과 우루크하이와 같은 포악하고 잔인하며 상식이 통하지 않으며 욕망만 남은 극우유투버, 태극기부대, 극우단체들과 일베 숭배자들을 창조해 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한 숨이 절로 나온다. 기독교의 고결하고 그 지혜를 헤아리기 힘든 신학은 온데간데 없고 인간의 본연의 욕망만을 자극하며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닌 것들을 샤머니즘과 결합해 불쾌하기 짝이 없는 변종이 되어버린 극우기독교 세력은 한국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어둠의 세력과 결탁하여 범접하기 힘든 욕망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극우기독교와 대결을 펼친다는 것은 그래서 더럽고, 복잡한데 답은 안 나오고, 죽을 것처럼 두려운 일이다.
회색의 간달프는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죽음에 가까운 치명상을 입은 후에 이미 타락해 순백의 순수성을 잃어 버리고 만 사루만과 대적할 수 있는 백색의 간달프로 부활했다. 백색의 간달프는 압도적인 병력의 열세로 함락이 바로 눈앞에 있었던 나팔산성 전투에서 새볔녘 해가 뜰 때 남은 로한의 기마대를 이끌고 나타나 적들을 섬멸한다. 회색의 간달프는 죽음을 넘어서는 곳에서 백색의 간달프로 부활하게 된다. 두렵고 떨리지만 모리아의 발록을 마주했을 때, 그는 자신을 뛰어넘어 또 다른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아직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기고자 하는 에도라스의 백성들이 있었고, 반지의 원정대가 있었고, 로한의 기마대와 엘프 지원군이 있었다. 그리고 단합된 그들의 힘은 결국 우루크하이와 오크 부대를 압도하게 된다.
극우기독교 세력을 상대하는 것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도 싶으며, 도망쳐 버리고 싶을 만큼 두려운 일일 수는 있으나,그렇게 영원히 회피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이제 대면해야 할 때이다. 코로나19은 그들의 민 낯이 어떠한지를 적나라하게 세상에 드러내었다. 극우기독교 세력을 넘어서지 않고는 한국 개신교의 미래가 없다. (원래는 극우개신교 세력이라 칭하는 것이 맞지만, 극우기독교 세력이라는 말이 이미 널리 쓰이고 있어 극우기독교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극우개신교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는 와중에 뜻 있고, 바르게 살고자 했던 타락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의 사과가 이어지고 있다. 밖에서 보면 나와 당신들 역시 타락하고 썩어빠진 극우개신교의 하나로 보일 수 있다. 지금까지 잘못된 것을 알면서 묵인했거나 묵인함으로써 동조했었던 과오를 사과하는 것이라면 괜찮다. 그러나 극우개신교의 만행으로 인해 벌어진 참사에 대해 기독교 일반이 해야 할 것은 사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크하잣둠의 다리위에 서서 발록을 대면하는 것이 그 다음으로 반드시 해야할 일이다.
타락하지 않은 한국 개신교인들은 안에서 극우기독교 세력과 담판을 벌여야 한다. 그 대결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눈을 감고 보이지 않는 척 해봐야 소용없다. 그런 태도로는 공멸할 뿐이다. 발록과 대면하지 않고는 백색의 간달프는 탄생하지 않는다. 백색의 간달프가 없는 중간계의 평화는 없다. 좌우를 둘러보라. 아직 남은 로한의 기마대와 싸우고자 하는 에도라스의 백성들이 있고 엘프 지원군, 아라곤과 레골라스, 김리도 있다. 아,맞다. 잠깐 잊고 있었던 호빗들도 있다. 혼자가 아니다. 그러다보면 승리는 새벽녘에, 해가 뜰 때쯤 온다.
“I am a servant of the Secret Fire, wielder of the flame of Anor. The dark fire will not avail you, flame of Udun! Go back to the shadow. You shall not pass!(나는 비밀의 불의 사자이며, 아노르의 불꽃의 지배자다. 네 어둠의 불은 무용지물이다. 우둔(Udun)의 불꽃이여! 어둠으로 돌아가라!! 너는 지나갈 수 없다!)” -Gandalf(간달프)